[변호사 칼럼] 보수는 왜 바뀌지 않는가 - 각인·퇴적·닫힌 계로 읽는 인지의 정치학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는 갓 태어난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각인하고, 이후 진짜 어미를 보여줘도 각인된 대상을 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각인은 뇌가 가장 유연한 생의 초기에 형성되며, 그 시기를 지나면 거의 수정되지 않는다.
지질학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작동한다. 지층은 시간이 쌓일수록 압력을 받아 굳어지고, 동일한 지각 변동이 일어나도 표층은 움직이지만 심층은 꿈쩍하지 않는다. 오래된 층일수록 변형에 필요한 에너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리고 열역학은 한 가지를 더 가르쳐 준다. 닫힌 계에서는 외부 에너지가 차단될 때 내부 질서는 스스로 갱신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세 원리를 정치 영역으로 옮겨 오면, '보수'라고 불리는 현상의 내부 구조가 비로소 선명해진다.
흔히 보수는 하나의 이념 집단으로 다뤄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두 개의 전혀 다른 메커니즘이 하나의 이름 아래 공존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인지 갱신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성장기에 특정 정보 환경에 각인되어 이후 새 정보가 아무리 제공돼도 기존 인지 틀이 우선 작동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인지 갱신이 가능하지만 현재 체제가 자신에게 유리하므로 의도적으로 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전자는 능력과 환경의 문제이고, 후자는 동기와 의지의 문제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변화에 대한 저항-은 동일하지만, 작동 원리는 전혀 다르다.
각인 이론의 관점에서 전자를 살펴보자.
한국 사회에서 특정 세대와 지역이 특정 정치 성향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는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권위주의 시대를 유년기와 청년기에 통과한 세대는 그 시기의 정보 환경-국가가 통제한 언론, 반공 교육, 지역적 연대 의식-을 인지의 기초 층위에 각인했다. 이후 민주화와 정보화가 진행되어 전혀 다른 사실들이 제공돼도, 각인된 인지 틀은 새 정보를 선택적으로 걸러내거나 무력화한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각인이 완료된 후에는 새끼 오리가 진짜 어미를 거부하듯, 진짜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인지적으로 자연스러운 상태가 된다.
퇴적층 이론은 여기에 세대와 지역이라는 변수를 정밀하게 얹는다. 대도시 청년층은 표층의 퇴적이다. 새로운 정보가 끊임없이 유입되고, 기존 인식은 비교적 낮은 에너지로도 갱신될 수 있다. 그러나 정보 접근이 제한된 농촌 지역의 고령층은 심층의 퇴적이다. 수십 년에 걸쳐 압력을 받아 굳어진 신념 체계를 바꾸려면 표층을 움직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다. 한국의 세대별·지역별 정치 지형이 선거마다 반복적으로 같은 패턴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것은 설득의 실패가 아니라 물리적 한계에 가깝다.
그런데 두 번째 유형-이익 기반 저항-은 다른 원리로 설명된다.
닫힌 계 이론이 여기서 작동한다. 이 집단은 인지 갱신 능력이 있다.
그들은 새 정보를 충분히 처리할 수 있고, 현실의 변화를 정확히 인식한다. 그럼에도 변화를 거부하는 이유는 현재 체제가 자신들의 자산, 지위, 기득권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언론 통제와 교육 통제를 지지하는 것은 단순한 검열 찬성이 아니다. 그것은 첫 번째 집단-각인된 다수-을 닫힌 계 안에 유지시키기 위한 체계적 전략이다. 시민의 인지 체계를 외부 정보가 차단된 닫힌 계로 만들어 두면, 인지 갱신에 필요한 에너지는 원천 차단된다. 열역학적으로, 외부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는 닫힌 계는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낼 수 없다. 국가가 통제하는 방송, 편향된 교과서, 지역 감정의 재생산은 이 닫힌 계를 인공적으로 유지하는 장치다.
결국 두 유형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익 기반 집단은 각인 이론과 퇴적층 이론이 예측하는 집단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한다. 각인된 인지 틀을 가진 다수는 자신의 이익과 무관하거나 심지어 반하는 방향으로 표를 행사하면서도 그것을 이념적 확신이라 믿는다. 이것이 '보수'라는 단일한 이름 아래 전혀 다른 두 메커니즘이 공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합하면 하나의 가설이 도출된다.
'각인 이론'과 '퇴적층 이론'이 설명하는 인지 게으름형 보수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각인 시기와 정보 환경의 산물이며, '닫힌 계 이론'이 설명하는 이익수호형 보수는 그 구조를 의도적으로 설계하고 유지하는 행위자다.
이 가설이 옳다면, 정치 변화의 핵심 전장은 선거가 아니라 각인이 형성되는 어린 시절의 정보 환경과 심층 퇴적을 새롭게 쌓을 수 있는 열린 계의 보장 - 즉 언론 독립과 교육 다양성 - 이라는 결론이 따라온다.
민주주의가 선거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 환경의 문제라는 오래된 통찰이, 이 세 가지 자연 원리에 의해 다시 한 번 논증된다.
각인된 새끼 오리에게 진짜 어미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목격하지 않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