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22

[변호사 칼럼] 전관예우는 비리가 아니라 포획이다


규제경제학에는 포획이론(regulatory capture)이라는 개념이 있다. 

본래 기업을 감시하라고 만든 규제 기관이,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그 기업의 인맥과 정보에 길들여져 규제의 칼날을 스스로 무디게 만든다는 것이다. 환경청 관료가 퇴직 후 오염 기업의 임원으로 가고, 그 인맥이 다시 규제를 느슨하게 만드는 회전문 인사가 그 전형적 장면이다. 우리 법조계의 전관예우를 들여다보면, 이것이 한국식 포획의 가장 정교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전관예우를 흔히 '나쁜 변호사 개인의 비리'로 여긴다. 하지만 포획이론의 렌즈로 보면 그것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적 종속이다. 권력을 감시하고 심판해야 할 법원과 검찰이, 바로 그 권력의 인맥망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 부장판사로 퇴직한 변호사가 다음 날 사건을 수임하면, 그 사건을 맡은 후배 판사는 어제까지 자신을 평가하던 선배를 법정에서 마주한다. 전화 한 통, 식사 한 끼의 인맥이 양형과 보석 결정에 스며들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검찰도 다르지 않다. 특수부 출신 전관이 수임한 사건은 무혐의 처분율이 유의미하게 높다는 분석이 거듭 나왔다. 공적 판단이 사적 관계에 종속되는 순간, 그것이 바로 포획이다.


여기서 한 가지 반론이 가능하다. 전관 변호사도 정당하게 자격을 갖춘 법조인이고,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변호권 아니냐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문제는 변호의 '실력'이 아니라 '관계'가 값으로 매겨진다는 데 있다. 수임료가 법리의 정교함이 아니라 담당 재판부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책정될 때, 그것은 변호가 아니라 인맥의 거래다.


그렇다면 왜 이 관행은 죽지 않는가. 여기서 관성의 법칙을 빌려올 필요가 있다. 운동하던 물체는 외력이 가해지지 않는 한 같은 방향으로 계속 굴러간다. 전관예우 금지법이 만들어지고, 변호사법이 개정되고, 몇몇 사건이 언론을 탔지만, 관행은 멈추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을 멈출 만한 '외력', 즉 처벌의 비용이 관성의 운동량보다 작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관예우 관련 징계는 솜방망이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임 제한 1~3년, 과태료 약간. 수억 원의 수임료 앞에서 이 정도 비용은 사업상 손실로 계산되고 만다. 외력이 운동량을 이기지 못하니, 시스템은 어제처럼 오늘도 같은 방향으로 굴러간다. 포획된 구조가 관성으로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는 것이다. 두 원리는 따로 노는 것이 아니다. 포획이 구조를 만들고, 관성이 그 구조를 시간 속에서 영속시킨다.



결국 전관예우를 끊으려면 개별 변호사의 양심에 호소할 일이 아니다. 포획된 회전문을 물리적으로 닫고, 관성을 이길 만큼의 외력 — 즉 수임료를 압도하는 처벌과 완전한 정보 공개 — 을 가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공적 판단이 사적 관계에 종속되는 이 구조는 내일도 같은 방향으로 굴러갈 것이다. 솜방망이로 굴러가는 바위를 멈출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진한 포획일지도 모른다.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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