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7

[변호사 칼럼] 거꾸로 가는 시계: 19세기 자본주의의 유령과 '신 신분제'의 역습

1. 1800년대로의 회귀, 신자유주의라는 타임머신


최근 몇십년간 세계 경제를 관통하는 '신자유주의'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오래된 과거를 향하고 있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자율을 극대화하자는 주장은, 결국 사회적 보호망이 전무했던 1800년대 초창기 자본주의로의 회귀와 다름없다.


자본을 가진 이는 시스템 위에서 군림하고, 플랫폼 노동자들은 마치 중세의 농노처럼 특정 알고리즘과 거대 자본에 종속되고 있다. 


문제는 '보호 장치 없는 엔진'은 반드시 과열된다는 점이다. 19세기 자본주의가 겪었던 극심한 양극화와 노동 착취라는 부작용이, 21세기인 지금 플랫폼 노동과 자산 격차라는 세련된 옷을 입고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과 '노동권'이라는 톱니바퀴가 빠져버리면서 시스템 전체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는 상태다. 


2. 19세기 좌파와 21세기 극우파의 평행이론


자본주의의 모순이 임계점에 달했을 때, 사회는 반드시 거칠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구조적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①과거의 반응(좌파): 19세기 자본주의 초기, 억압받던 이들은 '공산주의'라는 거대한 이론적 대안을 만들어 시스템 전체를 뒤엎으려 했다.


②현재의 반응(극우): 지금의 극우 포퓰리즘은 마르크스주의처럼 정교하게 이론화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반항하는 모습은 과거와 비슷같다.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이 느끼는 분노가 '혐오'와 '배타주의'라는 독성 강한 에너지를 타고 분출되고 있는 것이다.


세기 말 불평등 심화가 제국주의와 전체주의로 이어졌 듯이, 사회적 대전제(공정성)가 무너질 때 구성원들은 체제 전복적 선택을 하게 마련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20대가 보이는 극우적 성향은 시스템이 주는 고통(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니, 분노의 화살이 엉뚱하게 소수자나 외부인, 혹은 민주주의 시스템 그 자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해결책이 절대 될 수 없지만 쌓인 분노가 폭발할 곳으로 그 곳을 찾은 것이다. 이 때 정부가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에 그 모습은 더 과격해 질수 있다. 


19세기 좌파가 '새로운 몸'을 만들려 했다면, 지금의 극우는 '자신의 장기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고통에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극우파 횡행은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파괴하고 있다는 '자가면역질환'의 강력한 신호라고 볼 수 있다.


3. 돈이 곧 신분이 되는 '신 노예제'의 탄생


가장 위험한 징후는 '신분제의 부활'이다. 자본 소득이 노동 소득을 압도하는 순간, 계층 간의 사다리는 끊기고 이동성은 사라진다.


"돈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적 사고가 일상이 되면, 법과 정의라는 '사회적 대전제'는 자본 권력 앞에 무력해 진다. 


미국의 앱스틴 파일이 폭로한 세계를 보면 세계는 1:9:90의 세계라는 것이고, 1은 돈으로 법까지도 조종하며, 그 역할을 9(법조, 언론)가 하며, 90은 이들에 이용당하면서 그 1과 9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이다. 최근 AI시대에 미국의 일론머스크, 피터 틸 등이 보여주는 기술만능주의를 보면 더욱 위험해 보인다. 인간의 도구화가 더욱 심각해 질 것이고, 1이 가지는 위상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실제 브라질이나 우리나라도 최근 정치검찰, 정치법원의 문제로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었다. 조금 모습은 다르지만 이것도 앱스틴 파일의 구조와 큰 맥락은 같다. 가진 1들이 권력유지나 찬탈에 법을 이용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법조인은 1:9:90의 세계에서 9에 복무하며 1을 돕는 역할을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과거'와 같은 고시제도가 있는 나라는 법조인이 1에 매우 가깝다. 


1들이 9를 이용해 90을 지배하는 세계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일인 일표'의 원칙을 '일원 일표'의 논리로 대체하며, 실질적인 신 계급사회를 고착화시킬 수 있다.


이걸 헤쳐나갈수 있는 수단은 민주주의로 좋은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려면 1이 9를 이용해 90을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잘 알아야 하는데, 그 방법은 정보의 획득 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세계역사상 최고의 왕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로 국민들의 수준이 높아 민주주의에 최적화되어 있는 나라다. 더구나 유튜브와 같은 신문화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정보를 취득하기 쉽고 확산이 빠른 나라다. 그래서, 선거로 일단 브레이크를 걸수 있었지만 그 방향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우리보다 훨씬 못하다. 우리는 우리만 보니 잘 모르지만 실제 우리나라 국민들은 한글 덕에 지식수준이 매우 높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이용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에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래서, K 민주주의라는 말까지 있지 않은가. 


그러나, 기초가 좋다는 것이지, 정보를 받아들이는 역량은 별개 문제다. 우리도 아직 이상한 극우주의를 추종하는 세력들을 보면 걱정을 놓을 수 없다. 


4. 결론: 실험실의 대전제를 다시 세워야 할 때


변호사로서 나는 법정을 '사회적 대전제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연역적 집행의 근거가 되는 '공정'과 '평등'이라는 대전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국제적인 극우파의 득세는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자본주의의 숨통을 조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낡은 19세기적 사고에서 벗어나,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게 어떤게 될지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의 정부는 AI를 공공재 취급하고, 이를 통한 이익을 나누려는 등 정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알겠다. 


지금은 우리가 확실히 문제인식이나 해결노력에서 세계 1등이긴 한 것 같으니 강력한 응원을 보낸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