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8

[변호사 칼럼] 조선의 과거제 현대의 입시제도 - 평등을 말하며 불평등을 설계하는 사회

조선의 과거제는 양반만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

그러나 실제로는 양인, 즉 평민도 응시할 수 있었다.

법으로는 평등한 제도였다. 실제로 몇몇 양인들이 과거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안다.

평민이 과거에 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음을.

​

왜일까.

​

한문으로 된 『사서오경』을 읽고 외우며 깊이 이해할 시간을, 먹고 살기 바쁜 평민이 가질 수 있었을까.

​

자식 공부에 전념할 만큼 여유 있는 가정이 얼마나 있었을까.

​

결국 과거는 양반의 전유물이 되었다.

​

법의 문장은 평등했지만, 현실의 문턱은 높았다.

​

조선은 제도의 공정함으로 불평등을 포장했다.

​

​

오늘의 입시제도도 그 그림자를 닮았다.

​

수시와 정시, 두 제도가 모두 ‘공정’을 말하지만, 그 안의 구조를 보면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준비의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

먼저 수시제도를 보자.

수시는 다양한 전형으로 학생에게 기회를 주려 한다.

내신, 지방 학생 우대, 사회적 약자 배려—의도는 분명 선하다.

그러나 선의가 언제나 정의를 낳는 것은 아니다.

​

- 내신제도는 고등학교 1학년부터 입시의 압박을 만든다.

성적 관리의 투명성도 여전히 불신을 낳는다.

​

- 입시의 지나친 다양화는 또 다른 문제다.

학생과 학부모는 공부보다 입시제도를 먼저 공부해야 한다.

그 복잡한 구조를 이해하고 대비할 수 있는 사람은

시간과 돈이 있는 가정뿐이다.

결국 제도의 세분화가 또 다른 불평등의 언어가 된다.

조선의 양반이 과거의 문법을 독점했듯,

오늘의 상류층은 ‘입시의 문법’을 독점한다.

​

- 또한 과도한 소수자 배려는 실력주의의 균형을 흔든다.

사회적 배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제도의 ‘보완’이어야지, 제도의 ‘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배려의 이름으로 공정의 기준이 흐려지면,

결국 또 다른 불공정이 만들어진다.

​

​

다음으로, 정시를 보자.

정시의 수능 역시 문제를 안고 있다.

나는 최근 재미로 수능 문제를 풀다 깜짝 놀랐다.

대학교 3학년 법학서적의 ‘채권총론’ 일부가 지문으로 등장했던 것이다.

내용도 어렵고, 한 페이지만 읽어서는 이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걸 고등학생에게 풀라니, 정상이라 보기 어렵다.

​

과거의 『사서오경』이 평민에게 닿기 어려웠듯,

지나치게 어려운 수능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교육받은 학생에게만 유리하다.

조선시대 양반계급같은 자들에게만 유리하다는 것이다.

​

입시는 대학 수학 능력을 평가한다지만,

지금의 수능은 고등학생의 현실을 벗어난 지적 올림픽이 되었다.

그 결과 ‘문제를 푸는 법’을 배우는 산업만 번성했다.

이 또한 경제능력이 없으면 다니지도 못한다.

​

책을 많이 읽고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이 이상적이지만, 그조차 여유 있는 가정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

우리사회는 아직 저녁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맞벌이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힘들다.

​

수능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고등학생이라면 풀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대학에서 길러야 할 몫이다.

​

​

조선의 과거제는 공정의 언어로 신분을 고착시켰다.

오늘의 입시제도도 공정의 언어로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

진정한 공정은 기회를 무한히 늘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료한 규칙 속에서 실력을 겨룰 수 있게 하는 것이다.

​

조선은 그 단순한 진리를 잊었다.

물론, 조선은 신분제 사회니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

지금 우리는 신분제 사회도 아닌데,

특정 계급에게 유리한 제도를 취하다니...

비신분제 사회를 신분제로 바꾸려 하는 것인가?

​

조선의 양반제도가 사회 발전을 가로막았듯,

오늘의 입시제도는 또 다른 ‘양반’을 만들어가고 있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