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29

[변호사 칼럼] 능력주의의 허상 - 신분제를 재생산하는 공정의 탈

오늘날 우리는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를 이상적인 구조로 여긴다.​
어떤 배경에서 태어났든, 스스로 노력하고 실력을 쌓으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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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말 속에는 치명적인 맹점이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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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공정의 이름으로 불공정을 정당화하고 있으며, 그 결과 현대사회는 새로운 형태의 ‘신분제’로 변모하고 있다.

출발선은 평등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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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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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부모의 소득, 학력, 거주 지역, 정보력, 인맥은 자녀의 교육과 진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상은 출발선이 다른 경쟁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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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상위층 자녀는 풍부한 사교육, 안전한 주거, 다양한 진로 체험, 실패를 보완할 자원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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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저소득층 자녀는 기초적인 학습 환경조차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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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아이에게 “노력하면 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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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선이 다르면, 노력은 기회의 대체가 될 수 없다.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신분제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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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이런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신분제로 발전하는데 더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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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신분제는 혈통으로 신분이 고정되었지만, 오늘날의 신분제는 ‘능력’이라는 이름 아래 세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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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구조가 “공정”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교묘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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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부족하다고 낙인찍힌 사람은 실패를 자기 탓으로 돌리고 침묵한다.
사회는 그들을 돕는 대신, 능력부족, 경쟁도태라고 말한다. 마치 공정한 게임에서 패배했으니 결과를 수긍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때론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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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냉혹한 구조다.
책임은 사회가 만들고, 처벌은 개인이 받는다.
게다가 능력주의 사회에선 실패한 사람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녀들까지도 동일한 조건에서 다시 경쟁에 내몰린다.
불평등은 세습되고, 계층 이동은 점점 사라진다.
능력주의는 결국 계층 고정화를 정당화하는 사회적 장치가 된다.

능력에 따른 보상은 당연하나, 신분제로 변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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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능력주의는 필연적으로 신분제를 만드는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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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성공한 후, 자녀를 좋은 환경에서 키워 다시 경쟁우위를 갖추게 하는 것이야 당연하고 인간의 본능이다. 나라도 그렇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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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 내 능력이 부족했다고 하여, 내 자녀까지 그대로 물려받는 사회라면 미래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재능을 지녔더라도, 가난한 가정에 태어났다면 막노동 현장에서 사라졌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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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또 다시 중세 신분제 나라가 된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그냥 노비, 평민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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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양육,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이 대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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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바로 국가의 교육과 양육 책임화가 문제된다.
능력주의가 정당하려면 최소한 출발선은 비슷해야 한다.
없이 살아도 제대로 교육받을 수 있게는 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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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배경이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지 않도록, 국가는 보육, 교육, 의료, 주거 등 삶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을 안정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그러면에서, 다듬어야할 사회제도가 많다. 특히 현재 수시위주 입시제도는 능력주의에 유리한 것이 아닌지 급히 짚어볼 문제다.

이것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도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최소한의 기반이다.
불안한 사람은 도전하지 못하고, 도전하지 않는 사회는 정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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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의 허상에 빠지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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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대가 능력주의를 추종한다고들 한다.
젊은 나이엔 좋은 학벌과 직장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질 수 있다. 당연히 나보다 좋은 학벌,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은 부럽다.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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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당신이 못나서 그렇게 된 것일까?
당신도 많이 배운 부모, 돈 많은 가정에서 태어낫다면 좀 더 낫지 않았을까?
당신의 절대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구조가 그렇게 짜여서 있어서 힘들 가능성이 더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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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탓을 하지 말라.
그리고, 좋은 학벌, 좋은 직장을 동경하지도 말고, 우상화할 필요도 없다.
사실 그런 사람이 당신보다 낫지도 않다.
그것을 강조하는 정치집단에게는 표를 주어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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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사회에서 고민해야 할 부분은 그런 사회구조를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 자녀에게는 더 이상 그런 사회를 물려주지 않을 고민을 하자.
당신 혼자서는 못하니 그런 고민을 조금이라도 하는 정치집단을 지지하자.
그 정도가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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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묻고 시작해야 한다.
그 사람은 왜 능력을 펼칠 수 없었는가?
그 아이는 왜 경쟁에 참여조차 할 수 없었는가?
우리는 실패한 사람에게 사회적 복구의 기회를 주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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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사회는 능력에 따라 상을 주는 사회가 아니다.
출발선이 다르지 않고, 실패해도 회복 가능한 사회다.
성공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은 평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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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존엄을 지키는 사회는,
능력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두가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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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못하면 한국사회의 미래는 단언코 어둡다.

법무법인 한백 변호사 이진화변호사 이진화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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